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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인정하는 명작 사피엔스 1

by 메이그린 2024. 3. 20.

 



1. 인간, 걸어 다니는 대재앙?

수천만 년 넘게 잘 먹고 잘 살던 큰 쥐, 큰 코끼리, 큰 고양이, 원숭이도 인간을 만나자마자 2천 년도 안 되는 세월의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인간은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대재앙이었습니다.
인간이 호주에 도착하자마자 대형동물 24종 중 23종이 멸종했고, 히지 뉴칼레도니아 사모아톤과 마르키스, 하와이, 뉴질랜드, 아메리카 어떤 지역이든 인간이 발을 디디면 생태계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뀌어 나갔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그리고 이 잔인함은 우리와 똑같이 생겼지만 힘도 2배 세고 뇌 크기도 훨씬 큰 네안데르탈인에게도 행해졌습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궁금증이 생기지 않습니까? 인간은 어떻게 최고서식자가 됐을까요?
먹이 사슬에서 인간이 속하는 위치는 지극히 최근까지도 중간이었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이런 연약한 미물이 지구의 최고서식자가 되어서 다른 동물들을 괴롭힐 수 있었던 걸까요?

도구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은 인간말고도 여럿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랑우탄은 나뭇가지로 흰개미를 낚고 물에 빠진 물건도 건져냅니다.
대머리 독수리는 돌로 타조의 알을 깨먹고 갈매기는 바위에 조개를 깨 먹습니다.
비버는 아예 나무를 잘라 댐까지 지 도구를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란 말은 반례가 너무 많은 답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적절한 대답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바로 '불'일 겁니다.
인간이 불을 발견하면서부터 생으로는 먹기 힘든 쌀이나 감자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세균과 기생충 감염도 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핵심은 불이 가지고 있는 힘이 엄청나다는 겁니다.
불은 단 몇 시간 만에 숲을 태우고 수백 명을 몰살시킬 수 있습니다.
불의 힘은 그야말로 파괴적이었습니다. 물론 인간이 최고서식자가 된 이유가 불의 발견 때문만은 아닙니다.

인간을 강하게 만든 진짜 요인은 사실 '언어'였습니다.
물론 다른 영장류나 코끼리, 고래 같은 친구들도 자기네 언어로 대화를 나눕니다.
일례로 녹색 원숭이도 "조심해 독수리다" 같은 말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는 조금 다릅니다. 제한된 소리와 기호를 연결해 정말 무한대의 문장을 만들어냅니다.
원숭이가 "조심해 인간이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11시 30분에 신촌에서 원숭이 봤음." 그리고 더 나아가 "역 쪽에서?" "아니 역 말고 거기 아웃백 있는 쪽에."라며 정확한 위치와 그곳까지 가는 길까지 묘사할 수 있습니다.
이 정보를 두고 그 원숭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2. 인간이 먹이사슬 최고서식자가 된 결정적 이유

그러나 우리가 궁금한 인간이 어떻게 먹이사슬의 최고포식자가 되었느냐는 질문의 본질은 이런 게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궁금한 건 '인간이 어떻게 스마트폰을 쓰고 자동차를 타고 백신을 개발하고 로켓을 쏘게 됐냐.'
사피엔스는 그 질문에 명쾌한 답을 던지는 책입니다.

사피엔스가 설명하는 인간이 짱이 된 결정적 이유, 그건 바로바로 2단계의 레벨업입니다.

1단계는 농업 혁명, 2단계는 과학 혁명.
인간은 이 두 단계의 각성을 거치며 비로소 먹이사슬의 최고서식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농사를 짓기 전까지는 밥이 남을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웬만하면 하루치 먹을 것만 구해놓고 그마저도 음식이 상하기 전에 허겁지겁 먹어 치웠습니다.
그러나 농사는 어떻습니까? 그 특성상 수개월에서 1년 단위의 밥을 넉넉하게 남겨놓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게 생긴 이 남는 밥이 문명 발전의 핵심 요인이 되어줬습니다.
밥이 많이 남는 만큼 인구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머릿수가 많아지니 기술은 더 발전했고 기술이 발전하니 밥은 더 더 많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제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에게도 밥을 먹일 수 있게 됐고, 이 여분의 짬이 광석을 캐오는 광부 마을을 지키는 군인 같은 이른바 전문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공무원이나 왕 같은 정치인도 포함되었습니다.
바야흐로 국가가 탄생한 겁니다. 집에 남는 밥을 국가에 바치면 국가는 법과 군대로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줬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국가는 남는 밥을 얼마나 바쳤는지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었고, 문자는 인류 지식의 세이브 로드 장치가 되어줬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참 부족하죠.
농사가 혁명이었다는 건 알겠는데 이렇게 밭만 갈고 있으면 대체 언제 달에 도착하고 언제 스마트폰을 만들겠습니까?
농업혁명은 스타트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최상위포식자가 된 결정적 원인은 바로 2차 각성 즉 과학혁명에 있습니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 인간은 자기들이 알 건 다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모르는 게 생겼다 그러면 예수나 부처, 공자에게 물어보면 됐었습니다.
예수나 공자가 모르는 건 그냥 알 필요가 없는 쓸모없는 지식이었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알아서는 안 되는 지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물리학자들은 한평생을 끊임없이 공부해 왔으면서도 뭐가 빅뱅을 일으켰는지 어떻게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짬뽕시킬지 모르겠다고 순순히 인정합니다.
그러고는 "그래서 알고 싶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무엇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 세상은 크게 변했습니다.
빈틈없이 꽉 차 있던 세계지도는 절반이 넘게 공백으로 그려졌고, 텅텅 빈 지도를 본 사람들은 피가 들끓는 모험심과 정복욕을 느꼈습니다.
"알고 싶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 말이 맞다고 고집을 부리다가도 증거가 나오면 깔끔하게 인정하는 쿨한 자세를 취하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너도 몰랐고 나도 몰랐으니까. 자 이것이 바로 무지의 혁명이라 불리는 과학 혁명입니다.
인간이 갖게 된 아직 모른다는 생각은 세상 모든 미지를 탐험하고 정복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미지의 땅이 과학자들에 의해 정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이 바로 의학입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생활 중에 사소한 부상이라도 생기면 의사들은 손과 다리를 톱으로 잘랐습니다.
군 병원에는 의사 자격증을 갖춘 사람보다 목수집 아들이 더 많았습니다.
톱 다루는 기술 외엔 수술에 필요한 것이 딱히 없었으니까요.
어린이 3명 중에 1명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죽었고, 인류의 기대수명은 40세를 채 넘기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인류는 수많은 질병과 상처를 극복해 냈고, 기대 수명은 무려 두 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전에는 정말로 상상도 못 한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훨씬 더 놀라운 일을 해내려 합니다. 과학은 이미 벌레의 수명을 6배나 늘리고 학습 능력이 뛰어난 천재 생쥐를 만드는 성공 했습니다.
강철의 연금술사의 오토메일 같은 생체공학 파일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망막 임플란트, 청각장애인을 위한 바이오닉 귀 같이 인간의 신체를 대체하는 신박한 발명품도 줄을 지어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은 발전의 여지가 많지만 정말 근시일 내로 인간의 신체보다 훨씬 더 강하고 세밀한 기능을 수행할 겁니다.

그리고 "그냥 늙어 죽기 전에 새 걸로 갈아 끼우면 되잖아." 우리는 결국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정말로 엄근진 하게 2050년만 되어도 일부 인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물론 모든 학자가 이런 미래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지나온 수십 년을 돌이켜 보면 그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습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재생 능력을 높인다면, 나노 로봇으로 암세포를 제거한다면, 우리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한다면 인류는 이미 이런 판타지에 매년 수십, 수백, 수천 조 원에 달하는 눈이 핑 돌아갈 만큼의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하고 있고 그 가능성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습니다.


3. 인류의 레벨업! 과연 옳은 것일까?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뜬금없이 냅다 찬물을 끼얹습니다.
"이게 진짜처럼 보이세요?"라고 말입니다. 어디 한번 다시 쭉 돌아와서 농업혁명부터 봅시다.

우리는 흔히 농사를 인류의 레벨업이라 받아들이곤 합니다.
추위와 맹수로부터 덜덜 떨던 원시인이 문명의 보호받으며 안전한 삶을 누리게 된 건 다 농사 덕분이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농업혁명이 인간에게 안전을 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게 꼭 무조건 더 좋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수만 년 전 한반도의 수렵 채집인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예컨대 이랬을 겁니다. 아침 8시에 일어나 동료들과 캠프를 나섭니다.
주변 숲에서 버섯을 따고 나무를 캐고 개구리를 잡고 오후 1시에 캠프로 돌아와 점심 준비를 합니다.
남은 시간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다 춤을 추고 꿀잠을 잡니다.
그러나 농업혁명 이후의 농부는 타는 듯한 태양 아래와 질병이 들끓는 땅 위에서 하루 종일 잡초를 벗고 밭을 고르고 벌레를 잡고 똥을 모으고 물을 길렀습니다.
기르기 시작한 가축은 무수히 많은 전염병을 퍼뜨렸고, 남는 밥은 끝없는 욕심과 차별을 불러왔습니다.

농경사회의 사람들은 극히 최근까지도 매우 제한된 식품만 먹으며 영양 불균형적 식사를 했습니다.
매일매일 과일도 먹고, 생선도 먹고, 고기도 먹으며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하던 인간이 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비타민 부족에 시달리며 영양실조에 걸리고 키도 작아지고 몸도 허약해졌습니다.
굶어 죽는 일도 훨씬 더 많아졌습니다.

농업혁명의 가장 큰 문제가 이거였습니다.
단일 식량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너무 높았다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기 전에는 먹던 풀이 없어지면 다른 걸 먹거나 아예 이사를 가면 됐었습니다.
그런데 농사를 짓고부터는 가뭄, 화재, 지진 뭐 하나라도 일어나면 기근에 휩싸이고 굶어 죽어야 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농업혁명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에어컨도 못 쐬고 배달도 못 시켜 먹고 등 따시고 편안하게 못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천 년 전 가뭄으로 굶어 죽은 아이가 "나는 지금 영양실조로 죽지만 2천 년 뒤 사람들이 맛있는 밥을 먹고 에어컨이 딸린 큰 집에서 살게 될 테니 난 괴롭지 않다."라고 말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는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한 것도 과학이지만, 나가사키 원폭을 날린 것도 과학입니다.
과학 특유의 호기심과 정복욕은 미지의 바다를 넘어 아메리카를 발견하게 했지만, 그 이후에 일어난 일도 모두 과학의 호기심과 정복욕이 한 일입니다..
수많은 현대인이 과학이라는 발판 위에서 떵떵거리며 살지만, 그 발판 아래에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사체가 괴로운 표정으로 썩어가고 있습니다.
그럼 레벨업은 굳이 왜 한 걸까요? 작은 변화가 쌓이고 쌓여서 사회 전체가 바뀌었을 때쯤이면 우린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까먹어 버리곤 합니다.

지금의 우리는 냉장고, 에어컨, 스마트폰 없는 삶을 상상조차 못 합니다.
종종 배터리 없이 버스를 타야 할 때면 지옥 같은 공포를 느낍니다. '아 이거 타는 거 맞나?'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겪어봐서 압니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 우리의 일상은 괴롭고 무료하게 됩니다.

우리는 분명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좋고 발전된 세상을 살고 있다고 굳게 믿지만, 역사가 펼쳐짐에 따라 인류 복지가 무조건 좋아진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정말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정말로 더 행복해졌습니까?
아시아 최빈민국에 살던 아저씨 아줌마들은 지금 우리보다 우울하고 불행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나요?
과학혁명이 우리에게 초인적인 힘과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주는 동안 세상은 더 살기 좋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졌나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게 레벨업이 맞긴 할까요? 우리는 모든 게 다 좋아지고 세상은 발전해 간다고 생각하지만 역사는 놀랍게도 당신의 행복에는 일절 관심이 없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강조합니다.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개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우리에겐 뭐가 더 옳은지를 판단할 객관적인 척도가 없습니다.
현재 인류가 전례 없는 평화를 누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공동체가 해체되며 전례 없는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앞서 설명한 역사의 시간 단위는 최소 수천 년인데 반해 어린이 사망률이 떨어지고 기대 수명이 늘어난 건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가 과학혁명을 판단하기에는 다른 역사에 비해 기간이 너무 너무나 짧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유발 하라리가 농업혁명을 구더기라 비난했듯이 먼 훗날의 학자도 이 모든 혁명을 두고 구더기였다고 평가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어쩌면 과학혁명이 인류 행복의 실마리를 찾아 영원한 황금기를 맞이할지도 모르고 머지않을 미래의 파국을 일으킬 재앙의 씨앗이 될지도 모릅니다.

결국 사피엔스가 강조하는 핵심은 이겁니다.
역사가 증명하고 과학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은 지들이 어디로 가는지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조차 모른다는 겁니다.
자 여기까지가 사피엔스의 내용입니다.

책 사피엔스의 진짜 핵심은 2단계 레벨업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 생긴 근본 레벨업 인지혁명에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사피엔스의 진짜 진짜 핵심입니다.

사피엔스의 이야기를 한 편의 포스트로 다루기에 내용이 너무 방대하여 2개의 포스트로 나눠 연재하려고 합니다.
2부는 눈이 번쩍 뛰고 뒤통수가 얼얼한 인류사 최대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 편 포스트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