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의 팀워크
앞선 피드 사피엔스 1에서 인간이 최고서식자가 된 이유를 불이라고 했다가 언어라고 했다가 농사라고 했다가 과학이라 했다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했었습니다.
사실 책에서 말하는 원인은 훨씬 단순합니다. 그건 바로 팀워크입니다.
그런데 협동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닙니다.
팀워크는 침팬지에게도 있고 개미나 꿀벌에게도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앞에서 말한 동물들이 우리보다 훨씬 잘 협력합니다.
인간의 단합으로 이룰 수 있는 팀워크 마지노선은 잘 쳐줘야 150명도 채 안됩니다.
이 수치는 인간이라는 종에새겨진 본투비 한계이기 때문에 발버둥 친다고 늘어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 뛰어도 시속 100km를 뛸 수 없고 아무리 점프를 잘해도 100m 벽을 넘지 못하듯 아무리 끈끈한 집단이라도 인구가 150명을 넘으면 반드시 분열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물론 납득이 잘 안 되실 겁니다. 지금 우리는 5천만이 넘는 사람들과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팀워크를 이루고 있으니 말입니다.
손흥민이 골을 넣거나 BTS가 차트를 휩쓰는 걸 보면 대한민국 사람으로써 나름대로 희열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것은 꼭 국내에 한정된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만 해도 콩고인이 캐낸 자원을 대만인과 일본인이 가공하고 중국인과 인도인이 조립하는 대규모 팀워크로 만든 물건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인간 본연의 팀워크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2. 인간의 상상, 그것을 믿는 능력
7만 년 전 인지 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에겐 상상으로 만들어낸 걸 '아무튼' 있다고 믿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이날 이후로 인간들은 상상으로 만들어낸 악마를 믿고 상상으로 만들어낸 나무 정령을 믿었습니다.
그 덕분에 인간은 협력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먼 옛날 인간은 같은 핏줄끼리 수십 명씩 모여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사는 매우 편협한 동물이었습니다.
정말 어찌나 편협했는지 숲 속에서 옆마을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할 때면 여지없이 돌도끼를 꺼내 들어 상대의 머리통을 쪼개버렸습니다.
생긴 게 우리와 비슷하더라도 우리가 아니면 모조리 적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상상 속의 악마를 믿고 상상 속의 나무 정령을 믿으면서부터 인간의 '우리'는 수십 명 단위에서 수천 명, 수만 명으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피부색이 다르거나 쓰는 말이 다르더라도 같은 정령을 모신다는 사실만으로 서로 유대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들에게 나무 정령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무 정령이 '아무튼 굶으라.' 하면 굶었고 '아무튼 참으라.' 하면 참았고 더 나아가 '아무튼 죽이라.' 하면 남의 목숨은 물론 자신이나 혈연의 목숨까지 기꺼이 바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를 짚고 가자면
1. 나무 정령을 믿는 원시인이 지금의 우리(현대인)와 생물학적으로 코딱지만큼도 차이가 없다는 사실과 2. 나무 정령을 신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느낌이 확 달라집니다.
책 사피엔스가 설명하는 상상은 나무 정령과 악마에 국한된 개념이 아닙니다.
제우스나 조상신 더 나아가 여호와 하느님까지 포함하는 개념인 것입니다.
나무 정령과 하느님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현실에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대화를 나눌 수도 없습니다.
종교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언제 어디서나 아무튼 지켜야 하는 절대적 진리가 있다.
2. 그걸 남들한테도 아무튼 믿으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는 이슬람이든 자본주의든 모두 종교입니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평등주의도 마찬가지로 종교입니다.
자유주의, 민족주의, 평등주의를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걸 어떻게 부르든 간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구분 가능한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편협하게도 종종 진실을 선택하려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전제가 상상이며 인간들이 별 근거 없이 아무튼 믿는 개념이라 말한다면 아무튼 반박하고 싶어질 겁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평등과 자유에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정립했다는 미국의 독립 선언문 일부를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이들은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행복이 추구를 포함하는 양도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여기에 적힌 창조주라는 글자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천부인권이라는 상상의 기원은 명백히 기독교입니다.
모든 사람을 신이 만들었고 신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를 다니지 않는 당신에게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다는 말은 대체 뭘 의미하게 되는 걸까요?
키 몸 얼굴 대머리 유전뼈 모든 사람은 실제 생물학적으로 평등하지 않은데도 우리는 아무튼 인간은 평등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직 납득이 안 되셨다면 우리가 아무튼 한민족이고 아무튼 나라에 헌신해야 한다는 민족주의는 어떻습니까?
민족주의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정말로 단일 민족인가요?
단국대 생물학과 김욱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유전자는 북방계에 속하는 동북아 유전자와 난방계에 속하는 동남아 유전자 집단이 6 대 4 비율로 섞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애당초 그 기준은 어디로 봐야 하는 건가요?
인류의 뿌리가 아프리카에 있는데 세계인이 모두 단일 민족인 건 아닐까요?
국가는 어떻게든 5천만 명의 대한민국 국민이 '같은 과거, 같은 관심사, 같은 미래를 가진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려고 애를 쓰지만 그건 정말로 상상일 뿐입니다.
애당초 국가 그 자체가 상상인 것입니다. 중동의 나라는 프랑스인과 영국인 몇 명이 자를 대고 그은 경계선에 불과하지만 이라크와 시리아 사람들은 본인들이야말로 아비스 왕좌와 바벨로니아 제국의 의지를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며 그 영원한 의지를 굳게 믿고 국가에 목숨을 바칩니다.
지금 이 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고 어쩌면 우스꽝스럽게도 들릴지 모르지만 반대로 누군가 우리에게
"고구려는 중국일까요? 한국일까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혹시 매국노냐며 윽박을 지를 수도 있습니다.
사피엔스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우리나라든 너네 나라든 자유든 평등이든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개인주의든 세상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이 어떤 진리처럼 받아들이지만 그 정체는 현실과 무관하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상상이라는 게 기존에 없던 개념은 아닙니다.
칸트가 도덕 계약론에서 어렵게 어렵게 설명했던 내용이고 다른 학자들도 꾸준히 말해왔던 개념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상상이라고 하니 정신이 아찔해지지 않나요?
무슨 말인지 대충 알겠는데 왜 이 모든 말들에 반박하고 싶은 기분이 들까요?
아니 정말로 이 모든 게 상상이 맞긴 한가요?
이 내용을 바로 이해하게 해주는 아주 직관적인 예시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우리가 사랑에 마지않는 돈입니다. 나무 정령의 상상인 것처럼 돈도 마찬가지로 상상입니다.
화폐가 없던 옛날로 돌아가 물물 교환을 한다고 쳐봅시다.
당신이 사과 농장을 운영한다는 설정까지 함께 가정해 보겠습니다.
사과가 질린 당신이 포도를 먹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가진 사과를 포도와 바꿔 먹으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왕복 3시간 거리에 있는 포도 농장으로 찾아가 "작년에 사과 한 박스랑 포도 한 박스랑 바꿨으니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올해는 사과 5박스는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알고 보니 올해 흉년이 들어 찾는 사람에 비해 포도가 적게 나왔답니다.
그런데 그뿐이면 다행입니다.
사과의 흠집이 얼마나 났는지 포도는 얼마나 더 달달한지 크기는 어떤지 농약을 썼는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 달라집니다.
책상이랑 구두도 사려고 했는데 다른 물건들도 하나하나씩 다시 계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습니다.
사과 말고 귤을 먹고 싶다는 포도 농장 주인의 변덕을 부립니다. 이게 바로 물물교환의 최대 단점입니다.
상대가 원하는 물건을 들고 가야만 물물 교환이 성사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귤 농장을 찾아갔지만 귤 농장 주인은 수박을 먹고 싶답니다.
수박 농장 주인을 찾아가니 참외를 먹고 싶어 했고, 참외 농장 주인은 멜론을 먹고 싶어 했고, 멜론 농장 주인은 사과를 먹고 싶어 해서 드디어 교환에 성공하나 싶었지만 사과는 이미 썩어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상상을 하기로 합니다.
조개든 금이든 쌀이든 조상님이 그려진 알록달록한 종잇조각이든 뭐든 좋으니까 아무튼 뭘 하나 정해놓고 가치가 있다고 상상을 하기로 말입니다.
이렇게 생긴 것이 바로 돈입니다. 이제 우리는 포도를 먹기 위해 시세를 하나하나 계산하거나 멜론 농장까지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돈만 주면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물건으로 바꿔 먹을 수 있으니까요.
이게 무슨 가치가 있냐며 처음에야 물론 상상을 왜 믿냐며 심드렁하게 굴던 이도 많았지만
결국 그들도 돈을 믿는 사람과 거래하려면 돈을 믿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돈을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돈을 믿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편적 신뢰'라고 합니다.
덕분에 돈이라는 믿음은 천에서만 억 단위로 늘어나며 결국 전 세계 모든 이가 돈을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3. 모든 인간이 믿는 같은 상상, 돈
돈의 진가는 지금부터입니다. '전 세계 모든 이가 같은 상상을 믿는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느낌이 안 오십니까? 돈은 단순히 편리하냐 마냐 정도로 평가를 그르칠 개념이 아닙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상상은 팀워크의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고작 150명밖에 안 되던 인간 팀워크의 잠재적 한계가 80억 명으로 늘어난 겁니다.
위의 내용을 돌이켜서 회사라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인 공간인지 되짚어 보십시오.
팀워크라고는 뭣도 없던 편협한 인간이 수십, 수백, 수천 명씩 모여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업무를 협동해서 처리합니다.
이들은 가치관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이상형도 다르고, 생긴 것도 사는 것도 출신도 다 다릅니다.
사장이 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클라이언트가 이슬람교든 기독교든, 심지어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협력을 합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바로 우리 모두가 돈을 믿어서입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제한된 협력으로 빌빌대던 인간이라는 미물이 단 몇 백 년 만에 카누에서 갤리선과 증기선을 거쳐 우주 왕복선까지 만들 수 있어 있었던 이유를 말입니다.
단 몇 백 년 만에 기근과 전염병을 정복하고 무수한 재화를 만들며 지구의 최고포식자가 된 결정적 이유를 말입니다.
돈이 없어지면 어떡하죠?
걱정 마세요. 폭력이라는 수단을 써서라도 강제로라도 믿게 하거나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식으로 안전장치를 겹겹이 해놓으면 되니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수많은 안전장치가 바로 우리가 속한 국가, 우리가 믿는 종교, 우리가 다니는 회사, 우리가 가지는 가치관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 바닥부터 기둥과 벽까지 모두 이런 상상으로 지어졌습니다.
때로는 협력이 무너지지 않도록 상황에 맞게 적절히 수리해 가며 촘촘하게 겹겹이 짜내어 갔습니다.
협력은 단순 일을 같이 하냐 마냐 정도의 개념이 아닙니다.
사회를 유지하고 개인을 보호하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막말로 모든 상상이 사라진다면 이태원은 단 몇 분 만에 피바다로 변할 겁니다.
세상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인간이 길에서 수많은 남을 마주하면서도 돌도끼를 들지 않는 이유, 근래 수십 년 만에 폭력과 전쟁이 말도 안 될 만큼 줄어든 이유는 우리가 인권과 자유를 믿고 국가가 나서서 법으로 혼낼 거라고 믿고 벌금으로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걸 믿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더 이상 이 모든 게 상상의 개념일 뿐이라고 외치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이게 다 상상이 맞긴 하지만 그걸 입밖에 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반박이라도 할라 치면 머리가 깨지고 부서지더라도 입에 거품을 물고 개의 억지를 부려야 합니다.
우리가 중력을 안 믿는다고 해도 중력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상상은 우리가 안 믿으면 말짱 도루묵이 되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의 비밀을 밝히는 이유는 당신에게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계층만을 위한 부조리한 상상이 나타날 때, 사람들이 믿는 상상이 너무 낡고 해졌을 때 기존 질서에 저항하며 더 건전한 상상을 제안하고 공론화시킬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잊으시면 안 됩니다. 돈과 제국 종교를 만든 건 사피엔스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지구의 주인으로 우뚝 선 것도 사피엔스입니다.
돈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중요한 인간관계를 놓치고, 국가에 대한 자부심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다른 민족에 대한 편견을 갖는 등 자기가 만든 상상에 휘둘리며 사는 것도 사피엔스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사피엔스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