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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역사적 배경과 스토리 세심한 영상과 역사적 진정성

by 메이그린 2024. 1. 21.

 

 

1.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역사적 배경과 스토리

 

명과 수교 (침략?)를 맺고 싶었던 일본이 명나라로 가기 위해 조선에게 길을 내어달라 요청하지만 일본의 뜻이 단순히 길을 빌리는 건 아닐 거라 판단한 조선이 이를 거부하자 일본군이 1592년 임진년(선조 25)에 조선을 침략한 전쟁으로, 1597년 일본군이 두 번째 벌인 침략을 정유재란이라 부릅니다.

전쟁의 순서는 한산대첩, 정유재란이 시작되고 명량대첩 그리고 노량해전 순서입니다.

 

육지와 바다 수륙병진을 펼치려던 왜적.

이미 조선 땅에 들어온 왜군에게 물자를 지원하기 위해 서해 쪽을 뚫고 선조가 있는 의주까지 가려고 했으나 이순신장군은 한산대첩에서 학익진 전법을 통해 바다 위의 성을 쌓아 왜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둬 왜적의 계획은 물거품이 됩니다.

 

이후 선조의 귀에 일본 첩자가 흘린 정보(일본군이 부산으로 침략할 거라는)가 들어오게 되고 선조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에게 부산으로 가서 전쟁을 하라고 명하지만 이순신은 함정이라 여겼는지 아니면 승리할 수 없는 전투라 판단했는지 선조의 명을 거부하는데, 실제로 일본군이 부산으로 침략을 해옵니다. 이에 선조는 이순신에게 통제사의 자리를 박탈하고 백의종군을 명령합니다.

 

항명한 대가로 이순신은 감옥에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는데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가게 되지만 한 번의 더 기회를 주자는 상소문으로 겨우 풀려나게 됩니다.

 

그런 이순신이 감옥에서 나와 5-6개월 만에 참전한 전투가 바로 명량해전입니다.

명량해전은 이순신을 온갖 모함과 시기 질투했던 원균이 이순신 대신 참전하여 대패한 칠천량해전 이후의 전투입니다.

 

칠천량 해전에서 겨우 살아 돌아온(배설이 가지고 후퇴한) 배 12척을 가지고 참전을 한 이순신은 진도 울돌목(명량)의 지형적 특성을 활용(물살의 방향이 갑자기 역류)하여 수적 열세를 딛고 330척의 배를 가진 일본군을 격파합니다.

사실 12척이라고는 하나 일본 함대의 수가 어마어마하여 아무리 명령해도 따르는 자가 없어 이순신은 자신이 타고 있는 대장선 한 척을 끌고 나가 전투를 시작했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3개 전투 중에 제일 드라마틱한 전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명량해전이 끝나고 일본의 도요토미가 60대 나이로 병사를 하면서 조선에서 군을 철수하라 명령을 내립니다.

하지만 순천에 진을 치고 있던 일본 장수 고니시는 이순신 함대가 가로막고 있어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고 이에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을 뇌물로 매수하고 진린은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또 다른 일본군 시마즈에게 SOS를 치려는 고니시 부하가 빠져나가게 해 줍니다.

 

고니시의 요청에 시마즈는 고니시와 함께 이순신을 치러 순천으로 오는데,

전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싶지 않아 하던 진린은 전쟁을 그만두고 일본군에게 길을 내주자며 이순신을 설득하지만,

5년의 휴전 이후 또다시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군을 절대 살려 보낼 수 없다는 이순신은 조명 연합을 깨서라도

일본과 전쟁을 하고자 합니다.

그런 이순신과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던 진린이 결국 이순신과 함께 참전하여 시마즈를 상대로 벌인 전쟁이 바로 노량해전입니다.

 

노량해전은 전쟁과 사상자의 규모가 앞선 두 전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살육전이었으며, 무엇보다 6년이 넘는 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끝까지 밀어붙여 승리를 거둔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에서 불행히도 일본군이 쏜 총알이 이순신 장군의 옆구리를 관통하여 죽게 됩니다.

때문에 노량해전에 대한 기록은 이순신 아닌 다른 이들에 의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2. 세심한 영상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를 보면 세심한 영상미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기술력과 예술적 기교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 요소를 현대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매끄럽게 엮어내어 관객들이 더 집중하며 영화에 빠져들게 합니다.

영화의 컬러 팔레트는 흙빛 톤과 생생한 색상의 교향곡으로 관객을 노량해전이라는 격동의 역사적 배경으로 안내합니다. 자연광과 전략적인 프레임의 사용은 캐릭터의 생생한 감정을 강조하여 많은 것을 말해주는 시각적 언어를 만들어 냅니다.

 

전쟁의 혼돈과 격렬함을 세심하게 영상으로 담아내어 역사의 현장 가운데 있는 듯한 몰입도를 이끌어내며

신중하게 짜인 카메라 움직임과 혁신적인 각도를 통해 관객은 갈등의 중심으로 들어가 캐릭터와 함께 아드레날린과

공포를 경험하게 됩니다. 파노라마사진처럼 웅장한 전체장면과 클로즈업의 영상은 스토리텔링에 깊이를 더해

치열하고 무거운 전투에 관객들을 참여시키는 역할을 해 줍니다.

 

 

3. 역사적 진정성

 

'노량 죽음의 바다'는 관객을 과거로 데려가 16세기 한국의 풍부한 역사적 태피스트리에 몰입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상황에 맞는 여러 효과와 시대적 특성에 맞는 소품을 활용해 영화의 진정성을 높이고 역사의 맥박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각 장면의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조명과 구도를 사용하여 역사적 시대의 본질을 훌륭하게 포착합니다.

어두운 조명이 켜진 정치적 음모의 방이든, 햇빛이 내리쬐는 전쟁터이든,

모든 프레임은 내러티브에 생명을 불어넣는 세심하게 제작된 장면으로 역사를 진정성 있게 표현하려 노력하고 고심한

영화감독과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